쓸쓸함의 미학이 내 詩의 본질-브람스가 보내온 비엔나 숲 속의 편지 푸른사상

쓸쓸함의 미학이 내 詩의 본질
새벽 가로등ㆍ가을걷이 끝난 들녘…
`브람스가 보내온 비엔나 숲 속의 편지` 펴낸 윤호병 씨

'저는 해바라기나 장미보다는 길섶에 핀 한 송이 작은 풀꽃들을 더 좋아합니다. 화려한 대상보다는 사람들의 눈길에서 벗어난 후미지고 그늘진 곳에 더 눈길이 가는 편이죠. 정말 순수한 것은 보잘 것 없는 것 속에 있거든요.'

뛰어난 문학이론가이자 시인인 윤호병 씨가 새 시집 `브람스가 보내온 비엔나 숲 속의 편지`(푸른사상 펴냄)를 냈다.

윤씨가 재직하고 있는 추계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연구실은 온갖 소박한 소품들로 가득 차 있다. 작은 성모상에서 손때 묻은 피아노, 다양한 화초들, 수석에 이르기까지. 시인의 감성을 보여주는 듯 오롯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.

'시상이 떠오르는 특별한 순간이 있는 건 아니고 일상이 바로 시예요. 아파트 단지 근처를 산책할 때 누군가가 버리고 간 음료수병과 비닐봉지도 시상을 일깨워주거든요.'

이번 시집에는 `새벽 가로등`이라는 제목의 아주 짧은 명시 한 편이 숨겨져 있다. 그대로 옮겨보자.

 '애기 먼동 노을을 그리움처럼 깔고 / 활짝, / 찰나 속에 피었다 지는 / 꽃, / 순교의.'

새벽에 혼자 서 있는 가로등을 `찰나 속에 피었다 지는 꽃`으로 형상화한 이 시는 작지만 큰 울림을 준다. 쓸쓸한 가로등에서 `순교`의 의미를 이끌어내는 것. 이 점이 윤 시인의 시를 더욱 빛나게 한다.

'제 시편들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`쓸쓸함의 미학` 정도 될 거예요.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의 풍경, 낯선 외국 공항에 밤 늦은 시간 혼자 내렸을때 느끼는 착잡한 기분. 이런 것들이 제 시의 본질이죠.'

시집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윤씨의 시에는 음악성이 깔려 있다. 단순히 음악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라 음악을 시에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.

'시에 음악성을 의도한 것이라기보다는 시를 읽으면서 음악을 느끼고, 음악을 들으면서 시를 느끼는 동질성을 담아내려고 했죠. 브람스 말러 베토벤 바흐 등의 음악은 그 자체가 시라고 볼 수 있어요.'

윤씨는 겉멋 들린 시인이 아닌 진정성을 지닌 시인이 되고 싶어한다. '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,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정신세계의 지표'라고 믿기 때문이다.

2007. 12. 29/매일경제/허연 기자